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자를 만났을때, 1) 불쌍히 여겼다 2) 가까이 갔다 3)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었다. 4)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갔다. 5) 돌보아 주었다. 6)그의 재정적 필요를 채워주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자를 보았을때 전인적으로 치유해 주었다. 그의 마음에 어려움 당한 자를 불쌍히 여겼다. 그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아파 누워 있는 그의 사소한 필요들을 채워주고 돌보아 주었다. 한데나리온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지금 10만원 정도의 가치로 생각하면 될까? 두데나리온을 대신 지불해 주고 나중에 돌아와서 필요가 더 들면 더 지불하겠다고 했다.
바리새인들이 이 예화를 듣고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자비를 베푼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와 진실함으로 이웃에게 행한자라고 유대인들은 알고 있다.
이 자비를 배푼자 선한 사마리아 인을 묵상하고 기도할때, 바로 나를 이렇게 선한 사마리아 인이 되어 보살펴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난다. 그는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가까이 오셔서 동행하시고,성령의 기름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나의 상처를 싸매어 주신다. 그의 등에 나를 엎어시고 지존자의 은밀한 처소에서 보실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했을땨, 눈물과 마음의 따뜻함으로 채워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선한 사마리안인이셨다. 자비를 베푸신 자이셨다. 예수를 닮아아버지의 맘으로 이곳에서 자비를 베푸는 자로 살게 하소서.
요양 병원에 계신 어머니와 일주일이 넘게 연락이 안되었다.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소금을 절제했더니, 전해질이 부족해 지샸다고 진단결과를 받았다. 요즘 코로나때문에 요양 병원에 면허가 안되서 엄마도 무처 답답하실거다.
엄마가 힘이 없어지시고, 걷지를 못하게 되셔서 두달째 병원에 계신다. 엄마는 평생 자식들 밖에 모르고 사시고 매일 통화해야했다. 한 이주 계속 전화드려도 엄마랑 통화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드디어 엄마가 전화하셨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우신다. 그동안 전화가 고장나서전화를 못 받으셨다고 하신다. 오늘 간호사 선생님께 좀 고쳐 달라했더니, 자세히 봐 주시더니 내트워크 문제라고 전화기를 고쳐 주셨다한다.
엄마는 딸보니 넘 좋다하신다. 엄마는 요즘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며 어릴때 우리와 많이 놀지도 못하고, 돈 모은다고 맛있는것도 많이 못 사주고 이쁜옷도 많이 못 사줘서 후회된다고 하셨다.
엄마는 정말 악착같이 돈을 버셨다. 세딸을 혼자 키우시면서 시골에 집을 장만하셨다. 딸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셨을것다.
‘그래 엄마 내가 한국가면 하루라도 놀아달라고 했는데 출근한다고 안 놀아 주셨잖아’ 했더니, 이제 한국 오면 나랑 실컷 놀아 주실거란다. 막내동생도 엄마한테 아이들 어렸을때 엄마 제발 와서 같이 지내자 할때 엄마가 절대 안오셨다고 섭섭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엄마는 세딸과 아기자기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게 후회된다고 하셨다. 어릴때는 세딸 캐우시느라 그렇게 바쁘고 힘드신가 했는데, 아이들이 떠난 후에도 엄마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셨다.
엄마에게 엄마는 참 멋진 여성이라고 말씀드렸다. 여성 혼자서 세딸을 케우시기로 작정하시고,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세딸을 훌륭하게 캐우셨으니 말이다. 요즘 새삼 엄마가 그 시대에 자주적인 여성으로 의지의 한국인으로 와 닿는다. 멋진 우리 엄마!!! 나도 어릴적 엄마랑 넘 같이 놀고 싶었는데, 이제는 멀리 외국에 나와 있어 엄마랑 시간을 보낼수가 없다.
이제 또렷해지신 엄마모습을 보니 반갑고 감사하다. 엄마는 건강을 회복해서 손자손녀들 자라는거 함께 보실거라하샸다.
엄마랑 어린시절 함께 보낸 추억은 많이 없지만, 엄마의 사랑과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음에 감사한다.
*자녀들이 함께 있을 때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을 만들자. *자녀들의 고민이 뭔지, 소망이 무엇인지, 사소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보자. *사랑해 말로 표현하며 아이들을 안아주자
[커뮤니케이션 진단툴]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s) 에서 가져온 사진 https://m.blog.naver.com/ksalt7/220060632474#
조하리의 창은 여러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론이다. 자신이 아는 부분과 다른 사람이 아는 부분이 넓어질수록 인간 관계의 폭이 넓어지며 이해가 생긴다.
고향에서 결혼할때 까지 자랐으니, 나는 굳이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온식구를 서로아는 작은 동네에서 자랐으니 말이다. 어릴때 부타 자랄때까지 다.
결혼을 해서 남편을 따라 다니며 외국에 살기 시작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어느날 한 지인이 어릴적 아버지의 알콜 중독으로 인해 구타당했던 여러번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느꼈다. 부끄러운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 내니 우리도 그 분을 이해하게 되고 그 분도 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이후 나도 나의 이야기를 해내기 시작했다. 어릴적 부모님이야기, 아팠던것 등등 이다. 어느날 한 친구를 붙들며 나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의붓어머니와 아버지와 그녀의 자매들이 괴롭혔던 어린시절이야가는 눈물없이 들을수 없어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느낀건 다들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구나였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그 걸음속에서 배우고 느끼고 회복된 이야기를 친구들과 그리고 글로써 나름 열삼히 이야기를 해 냈던것 같다.
성장통을 앓고 있는 딸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딸의 친구가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누는 모습에 영향을 받아 딸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적기 시작했다 한다. 또한 친한 친구와 내면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깊이 이야기 하며 나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과 다른사람이 아는 나의 모습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좀더 건강한 관계들을 맺어 나갈 수 있을것 같다. 🌷
치유 회복 그룹에 참여하면 가족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미술 치료를 공부하며 가족동역화에 대해서 들어 보았었다. 가족이 무언가 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어릴적 원가족 그림을 그리는데, 어려움과 아픔이 있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우리가 함께 노래할때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그렸다.
내가 성장한 가정이 역기능 가족이라 정의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할려고 오랫동안 씨름했지만, 원가족의 가족 역기능 검사를 했을 때 오히려 그 수치가 높지 않았다. 아빠가 부재한 가정이었지만, 엄마의 헌신과 희생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주셨고 세딸이 서로 본딩하고 자라 나름 우리는 조금만 주위의 도움이 있으면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어릴때 시골교회가 우리의 큰 가족이 되어 주어 우리는 그나마 든든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가족 그림에서 가족의 위치와 거리가 내 마음의 거리를 반영한다고 한다. 막내 동생이 나와 심리적 거리가 가까웠다.
특히 뒷모습을 보이는 가족이나, 여러번 고치는 가족과는 마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싱글 맘이었던 엄마, 아빠의 자리까지 감당해야 했던 엄마, 세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장 엄마와의 심리적 거리로 융합적 관계가 되어 엄마와의 관계를 씨름한 증거가 그림에도 나타났다. 엄마의 자리를 고민하고, 모습을 고민하면서 여러번 고치기도 했다.
가족 그림을 통해 삶의 무게로 우리가 자라는 이쁜 모습을 즐감할 시간이 없었던 엄마에게 마음의 애잔함을 느꼈다. 장녀로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던 나에게 마음이 쓰여 마음의 눈물을 만나며 어린 나를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가족그림그리기에 참여한 동료들의 위로의 말을 들으며 따뜻한 마음의 감동을 받았다. 10여분의 짧은 시간에 그린 원가족 그림그리기를 통해 어릴적 나를 다시금 만나며 가족들도 다시 만나며, 마음의 눈물과 위로를 가져오는 시간이 되었다.
동생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본인들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본다. 이쁘게 그려줬다고 좋아했다. 그림치료를 공부한 동생이 자신에게 엄격하냐고 물어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자기도 녹색을 사용했었는데 선생님이 자신에게 엄격하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생각해 봐야 할듯하다. 상담 선생님께서 그림이 작게 그려졌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커질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더 커져야 할 부분은 어디일까? 더 성장해서 충만하고 행복해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서른이 넘어서 외국생활이 시작되었다. 외국학교에서 외국 친구들과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을때, 나는 경쟁심이 몸에 베겨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에 벤 경쟁심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 보았을때 한국에서의 학교교육과 환경에 원인이 있는 것 같았다. 학교 수업이 있을때 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초등학교때는 제일 가까운 친구에게 공부인하고 자는 것처럼 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좋은 성적을 내야했고, 친구들과 경쟁에서도 이겨야 했던것 같았다.
다른 문화 서양의 문화를 만나며 윈윈의 개념이 좋았다. 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고 그리하여 우리가 잘되는 윈윈 개념을 만나며 나의 삶이 확장됨을 느꼈다.
우리나라는 좁은 땅위에서 돌아보면 사람들로 둘러쌓여있다. 먹고살기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했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선위의 경쟁을 해야했다. 경쟁은 우리의 마음과 몸에 스트레스를 준다. 이기기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게 이상적일 것이다. 윈윈:나도 잘되고 너도 잘되고 우리가 잘되며 행복해 지는 삶을 생각해본다.
코로나때문에 말레이시아는 다시 MCO에 들어갔다 요즘은 하루에 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와서 이동제한 명령은
계속 연장 될 것 같다. 차에 두명씩 타도록 제한하고 이동거리도 제한이 있어 각 지역이 경찰의 검문이 있다. 첫번째 MCO때는 시장도 한사람만 갈 수 있었고, 운전못하는 나는 주구장창 집에 있어야 했다. 작은 모임들이 있었던 나는 친구들에게 온라인으로 만나자고 제안했고, 말레이 친구들은 줌을 찾아 냈다.
줌을 사용하기전에 줌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줌은 중국 회사가 운영하고 있어, 우리의 정보가 중국으로 다 넘어간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줌에 정착하고 줌을 통해 만나기 시작했다. 무료했던 우리는 줌을 통해 매일 만나 함께 공부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1. 줌 아이디(ID)와 암호로 줌 회의 참가하기
온라인과 영상 통화에 익숙치 않은 세대는 줌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것 같다. 처음에는 내얼굴이 이렇게 화면에 나오니 부담 스러웠다. 줌을 사용한지 반년이 넘어가면서 내얼굴이 화면에 나오는 것도 적응해 가고 있다.
첫 걸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하다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많은 만남과 교육이 기다리고 있다.
한 친구는 줌 사용을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더니 드디어 줌에 입성했고, 우리는 얼굴을 볼수 있어서 넘 기뻤다.
줌 주소를 받았을 때 링크를 같이 보내주셨으면 그 링크만 타고 들어가도 줌이 열려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다.
2. 오디오 사용
어떤 친구들은 줌을 처음 시작할때 오디오가 켜지지 않아 한참 우리가 도와 주어야 했다.
줌을 열고 들어올때 오디오사용을 클릭해야했다. 그러면서 줌에 회의를 시작하고 줌에 접속하고 화면을 공유하고 갤러리에 발표자가 얼굴이 집중되어 나오는등 줌의 여러가지 기능에 익숙해 졌다. 다시금 말레이시아에 이동제한 명령이 내려지면서 다시금 줌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안에서도 만나지만, 국경을 초월해서 미국과도 연결이 되어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을 때
줌을 사용하는데 한동안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는데 나의 말을 다른 사람이 알아 들을수 없을 때가 있었다. 한동안 불편하게 지냈다. 몇주를 그렇게 보내고는 내 컴퓨터 자체내에 설정에 들어가서 오디오를 체크하고 켜주니 나의 말을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소리가 들리기 원하지 않을 떄는 음소거를 해 주면 나의 소리는 나가지 않고 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조절할 수 있다.
줌미팅 활용법을 강의가 줌으로 열렸다. 기초적인 사용법은 알고 있지만, 좀더 많은 기능들이 있을 것 같아 함께 하고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강사로는 한국에서 인생나무코칭연구소 대표님이 줌으로 가르쳐주셨다. 다음은 새롭게 알게된 줌사용법들이다.
3. 회의 호스팅
줌회의에 참가도 해보고 내가 직접 회의를 개최해 보자. 그럼 친구들과도 만나고 가족들과의 미팅도 주관해 볼 수 있다.
줌 처음 화면에 회의 호스팅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한다 -회의 예약 클릭해서 시간을 확정한다. 줌 회의 초대장이 형성된다. 회의 아이디와 암호와 링크를 공유할 수 있다. 이 링크만 클릭해도 회의에 참가할 수 있어 줌 사용은 온라인에 대한 부담만 감수한다면 쉽게 배울 수 있다.
4. 카메라 사용법
카메라그림옆에 ^ 표시를 누른다. 그러면 몇가지 기능들이 나타난다.
* 카메라 필터: 여기서 유용했던 것은 카메라 필터이다. 카메라 필터를 사용하면 뽀샤시해서 리얼얼굴보다 화사시하게 보여 좋았다. 얼굴에 기미나 주근깨를 가릴수 있는 카레라 화장이다.
* 카메라 사용으로 내 얼굴이 나타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카메라를 꺼주면 이름이 나타나기도 하고 화면에 그림을 넣어놓으면 그림으로 나타난다.
* 카메라 가상 화면: 카메라 화면 내 얼굴 뒤에 배경이 나타나도록 가상 화면을 만들어 줄수 있다.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 다름사람의 얼굴이 커튼처럼 가려지게 된다.
여러가지 배경화면들을 사용해 보는데 빛 때문에 얼굴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가지 팁은 컴퓨터 앞에 조명광을 사용해서 켜주면 배경과 내 얼굴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5. 조명사용하기
인생나무코칭연구소 조민철 대표는 줌 사용을 위해 특별히 조명을 사용한다고 했다. 얼굴앞쪽에 조명 하나 정도 마련하면 더 밝아 보인다고 한다. 줌사용을 위해 이정도는 투자를 해야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줌을 사용할때 조명을 등지고 앉았더니, 내얼굴 화면이 넘 어두워 보여 신경쓰여 그 다음에는 책상 위치를 바꾸어 얼굴을 환하게 보이게 했던 경험이 있다.
6. 초대장 사용하기
참가자 부분을 클릭하면 참가자 들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메일과 초대링크 복사등의 기능이 있다.
줌에 대해 아직 배울 것들이 많이 있다. 소그룹나누기는 강의를 들었고, 현지 친구들과 함께 소그룹으로 나누어져 참가해 보았는데 실습을 좀 더 해봐야 겠다. 일단 세명이 있어야 실습을 해 볼 수 있다. 화이트 보드 사용법도 다음편에 계속 해 보겠다.
7. 화면 공유하기
줌미팅에서 화면 공유는 회의를 대면 만남처럼 실제적으로 해준다. 줌화면 아래쪽 중간에 있는 공유 버튼을 누르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 화이트 보드를 사용해서 칠판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유튜브 동영상이나, 서류들을 참가 회원들이 볼 수 있도록 공유할 수 있다. 공유하시는 분은 회의 주관자로 부터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 받아야 한다.
자료를 공유한뒤에 밑에 있는 화면 공유를 틱하고 설정해 주자.
코로나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었지만, 줌이나 다른 온라인 미팅 사이트들을 이용해 계속적인 만남을 이어가며 성장을 위한 전진을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한 일이다. 줌회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온라인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을 교환하며 여러가지 활동들을 할 수 있는게 감사하다.
아직 줌을 사용해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용기를 가지시고 시작해 보기 바란다.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으며
1) 왼손으로 옥타브를 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왼손으로 많은 음들을 쳐주면 오른손이 연주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대신 1음과 5음을 잡아주는 버릇을 가지자. 나는 옥타브로 연주할때가 많긴하다. 왼손 옥타브를 아예 포기 할 수 없지만, 오른손이 높은 음역대를 차지 한다면, 왼손을 중간 음역대로 와서 빈 공간을 메워 주는 것에 관심을 가져본다. 7th 음을 왼손으로 1음과 7음을 잡아주는 것을 연습하면 훨씬 반주하기가 편해진다.
2) 반주에서 멜로디를 연주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오른손으로 멜로디를 반주했지만, 이제는 코드 반주를 할 수 있다. 4비트로, 필인으로 채우기이다. 왜냐하면 반주는 다른 악기나 보이스가 잘 연주하도록 돕는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4비트로 반주하다 마지막 박에 필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4비트를 조금 변형시키는 방법들이 있다. 터치를 변화 시킬수 있고, 4박 다 치는게 아니라,
3)중간 음역대를 주로 채우자. 왼손을 옥타브로 잡다보면 이 중간 음역대를 비워서 소리를 허전하게 만든다. 주로 나도 이 스타일로 반주하곤 한다. 중간 음역대는 낮은 미에서 가온 미까지가 중간 음역대아다. 중간 음역대로 코드 전위를 연습하고 손에 익도록 하자.
다시 코드별로 중간 음역대를 사용한 운지법을 스스로 찾아 보았다. 반주자들의 연주가 기억난다. 바로 이것였어. 중간 음역대를 사용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