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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37절)

어떤 명절일까 궁금하다.
7장 2절에서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했다.
유대인의 7대 명절은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이다.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3대 절기중의 하나이다. 가을 농작물을 거둘때에 감사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초막절의 이름의 뜻은 '장막을 짓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고 한다 (레 23;33-44)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뒤에 광야에서 초막에 거주하게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광야 40년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초막절을 지킬때 영적 갈증에서 해소되고 구원 받는 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초막절에 예수님께서 성령에 대해서 언급하시며 초막절이 끝나는 날에 이 말씀을 하셨다.
초막절이 끝나는 날 광야생활을 체험하며 목마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2.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Anyone who is thirsty may come to me)

나는 목마름을 느끼는가? 무엇에 목말라 하는가?
허전한 마음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무어엔가 목말라 하고 있지 아니한가?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초청하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세상것들로 채워 보고자 하지만, 목마른 마음을 채울 수가 없다.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예수에 목말라하는 하루하루를 생각한다.
주여 이 목마름을 주옵소서. 예수로 목말라해서 주님께로 날마다 나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목마른자는 예수께 나아올지어다.

마시는 행동은 무엇인가?
우리 동생은 요즘 예수에 목말라 한다. 직장 생활에 바쁘지만, 매일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문설주 앞에서 기다리는 영혼 같다. Q.T를 두번한다. 영성일기를 적는다. 영어성경낭독, 한글 성경낭독, 기도에 헌신한다. 동생이 목말라 주님의 말씀을 찾는 그 갈망함, 사모함을 통해 말씀의 인도를 순간순간 받는다.
말씀이 살아서 동생에게 찾아온다.

목마른자는 갈증을 해소시킬 것을 찾는다. 예수에 목말라하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찾을 때
그의 갈급한 마음에 채움을 입는다.

3.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38절)

(He that believeth on me, as the scripture hath said,
out of his belly shall folw rivers of living water)

그 배를 영어로 찾아보았다.
from his heart (NLT) 그의 마음에서
From within him (ASV) 그의 안에서
Out of his belly (KJV) 그의 배로부터
Out of the midst of him (OJB) 그의 중심으로 부터

이 절의 해석은 39절에 설명되어 있다.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나의 목마름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질 것이다.
예수로 채워지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리라.
배에 영의 좌소가 있다고 들었다. 우리속에 있는 온갖 죄들이 성령의 불에 태움을 입고
그리스도 보혈로 씻음을 입어 우리의 배에서 성령이 강같이 흐름을 고대한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께서 충만히 거하시며 동행하심을 사모한다.

기도
주여 이 목마름을 주옵소서. 예수에 목말라하시고, 진리에 목말라 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사모하게 하소서.
그 목마름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우시며 강같이 흐르는 성령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장소는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베데스다 연못이다.
1. 베데스다 연못
많은 병자들이 거기에 누워있다.
어떤 병에 걸렸든지 물이 움직인 후에 들어가게 되면 낫게된다.
이 연못 참으로 특이하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바는 실제로 이 연못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2. 38년된 병자와 예수의 만남
1.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장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에수님께서38년동안 누워 있는 환자에게 하신 질문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이다.

이 질문석애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다.

병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한다. 왠지 핵심을 지나가는 듯하다.

아마 그의 마음은 주님 정말로 간절히 저는 낫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저를 물속에 넣어주는 사람이 앖습니다.

이 대답속애는 다른 사람을 원망히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요한복음 5장 7절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병자에게 충격을 주는 질문이 될수도 있을것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질문 속에서

치유는 바로 내인에서 일어 나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안에서 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치유를 시작하는 곳은 남으로부터가 아니다.
내속에서
내안에서
치유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일어가라는 강력한 명령은
예수님의 명령과 선포의 말씀이다.

적용 38년동안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남이 해주기를 바라고 있던 것은 없는가?

곰곰히 생각해보자
38년동안이다 지긋지긋하게 깔고 앉아있던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너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야할 곳은 무엇일까.

요한복음 2장 1-12 물을 가득 채우라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 3. 22. 15:56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가나의 혼인잔치



가나의 혼인잔치 

 

1.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2:3)

삶속에서 포도주가 떨어지는 경험을 해 보았는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다. 

 The wine supply ran out during the festivites~~ 

그것도 잔치가 한참 진행중일 때 포도주가 떨어졌다.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다.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언제 이루어질지 기다리고 있다. 

농부의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며  말이다. 

 

2. 예수의 어머니의 믿음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린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줄 알고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자라시면서 잔치집의 포도주를 해결할 만한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우리는 함께 질문해 보았을 때 

예수의 어머니는 알았다라고 우리는 추측해 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했으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 줄 

생각해 본다. 

 

예수님의 대답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2:4) 

라는 대답을 듣고도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한다.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때가 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의 때와 아버지 하나님의 때가 다르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의 때가 있다고 말이다. 

 

믿음으로 기다릴때 우리는 마리아의 태도가 필요한것 같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를 믿으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실 그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선포하고 기다리자. 

 

3.돌항아리 여섯 (요 2:6)

 

그 잔치집에 손과 발을 씻을 물통이 놓여있었다. 

이것이 기적을 일으키는 장소, 도구가 될 지 누가 알았겠는가? 

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지만,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다릴때 

하나님께서 나의 주위에 기적을 행할 장소와 일도 함께 준비해 두고 있음이 

느껴진다. 

 

Standing nearby were six stone water jars,

used for Jewish ceremonial washing each could hold twenty to thirty gallons. (John 2: 6) NLT

 

자료를 찾아보니 이 돌항아리들은 각각 30겔론을 담을 수 있는 크기의 물통이다. 

1겔론은 약 3.8리터이다. 

제법 큼직한 항아리들이다. 

 

하나님께 나의 문제들이 맡겨질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고, 나의 결핍의 장소를 기적의 장소를 바꾸시는 분이시다. 

 

4. 물을 채우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요2:7)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물을 채우라 하시니 그 하인들은 아귀까지 물을 가득채웠다. 

이 하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까? 

예수님의 말씀에 그들은 질문도 하지 않고 항아리 가득하게 물을 가득 채운다.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이들의 믿음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 

 

5. 갖다 주었더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요 2:8) 

종들을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다. 토를 달지 않았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물이 언제 포도주로 변했을까? 

바로 그 순종의 순간에 물을 손님들에게 갖다 주는 그 순간일 것 같다.

물은 포도주로 바뀌었다. 

 

아직도 물과 같은 나의 상태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포도주의 삶으로 변해야 하지 않을까? 

주님께서 나의 인생을 포도주처럼 변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된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처럼 

나의 육신은 죽어지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새로운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사람으로 

자라야 겠다. 

 

친구들과 요한복음 2장을 함께 묵상하며 

내가 받았던 묵상을 나누어 본다. 

 

나의 결핍과 기도제목이 있을때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선포할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결핍의 장소를 기적의 장소로 바꾸어 주실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응답을 기다리리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대답에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응답한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하며 그의 때를 기다리자. 

 

 

 

열므나의 비유 (눅 19: 11-27)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 1. 18. 16:50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은 열므나의 비유를 보면서 달란트 비유와 다른것을 보았다.

달란트 비유는 각 사람에게 달란트가 10달란트 5달란트 1달란트 주어졌다.

 

오늘 열므나의 비유는

11절에서는 에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절에는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열명 모두에게 똑같이 한므나씩 주신것이다.

 

므나는 금은보석같은 귀금속의 중량을 재는 단위들이다. 한 므나는 한 달란트의 60분의 이 정도라고 한다.

1 므나는 100 드라크마인데, 1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 주시는 므나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것을 가지고 장사하라고 하신다 (v13).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1. 착한 종

V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V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첫쨰와 둘쨰 종들에게

V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하고

V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주인은 종들에게 한므나씩 맡겨서 바로 장사하기를 원했고, 장사하여 이득을 남긴 종들에게

고을을 다시리는 권세를 주셨다. 주인이 사용하기 원하시는 종은 아주 작은 일에라도 충성되게 일하며

열맺맺는 종들을 사용하신다.

 

착한 종들처럼 올해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삶을 살도록 다짐해 본다. 내가 만나는 한사람, 내게 찾아오는 작은 섬김의 기회들을 정성스럽게 대해보자고 생각해 본다.

 

2. 악한 종

 

V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V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I was afraid because you are a hard man to deal with, taking what isn't yours and harvesting crops you didn't plant.')

 

한므나를 받은 종의 자세는 주인이 엄한 사람인것을 두려워 했다. 얼마나 두려워 했으면 그 돈을 잃어 버릴까봐 아예 숨겨두었다고 했다. 여기서 종의 자세는 주인을 향해서 반감까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종의 주인에 대한 이해는

아주 비뚤어져 있다. 주인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거두는 사람 부당한 사람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주인을 무서워 하고 있다.

 

이 종은 주인을 잘 못 이해하고 있다. 주인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에 대한 마음이 좋지 않음을 감지 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나 또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왜곡하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 성령님께서 나의 생각과 인식들을 조명하시고, 주님이 보시는 눈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확장되기를 기도한다.

 

3. 하나님의 나라

v11 하반절에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He told them a story to correct the impression that the kigdom of God would begin right away)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시며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곧 임할 것이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가 하나님나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나라가 바로 지금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왕이 종들에게 므나를 맡기고 가듯 우리에게 작은 겨자씨 같은 사명이 주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열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진다.

주인이 왕이 되어 올때 까지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다시 오실 왕을 기다리자.

 

V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리 무릇 있는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to those who sue well what theat are given, even more sill be given, But from those who do nothing, even what little they have sill be taken away)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며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시다.

우리도 왕의 오심을 준비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충성된 자가 되자.

 

 

 

 

바리새인과 세리 의 기도(눅 18:9-14)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 1. 11. 20:32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눅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본문을 묵상하며 바리새인과 세리의 태도가 극명하게 다른것이 눈이 뛴다.

 

1. 세리의 태도 

세리는 실제로 죄를 많이 지었을 것이다. 타의든 자의든 그의 직업상으로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금을 뜯어내며 재물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을 수도 있다. 

그의 태도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13절에 그는 아예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멀리서있다. 감히 눈을 들지도 못한다. 

그가 지은 죄로 인해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친다. 

"But the tax collector stood at a distance and dared not even lift his eyes to heaven as he prayed. Instead, he beat his chest in sorrow, saying, 'O God, be merciful to me, for I am a sinner.' NLT (Luke 18:13) 
세리는 비록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앞에서 정말 본인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가슴을 치며 회개한다. 

세리는 죄를 깨닫고 통회하고 자복하였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오늘 나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 기도문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죄인음을 인정하며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회개의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앞에 나아가기를 소원한다. 

 

2. 바리새인의 태도 

바리새인의 태도는 새리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의 삶속에서 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번 금식하고 토색 불의, 간음하지 않았음을 하나님앞에서 감사하며 자랑한다. 

그는 확신한다. 이 죄인 새리와는 절대 같지 않다는 것을!!!

I thank you, God, that i am not a sinner like everyone else, For I don't cheat, I don't sin, and I don't commit adultery. I am certainly not like that tax collector! (11절 하반절) 

 

예수님은 이 예화를 이렇게 시작하신다. 자기 자신의 의에 대해 아주 확신하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로 이 비유를 시작하셨다. 

Then Jesus told this story to some who had great confidence in their own righteousness and scorned everyone else:

(눅 18:9) 

 

바리새인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자신의 모습이 이속에 있는 듯 하다. 

나는 옳다고 믿고, 상대방의 잘못과 죄에 대해 손가락질하며,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확신하는 모습말이다. 

가까이 가족 관계 안에서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히려 남편이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나는 옳다고 마음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보는 관점은 다르다. 

하나님앞에서 나의죄를 다루는 모습을 보셨다. 

비록 세리가 죄를 지었을 지라도 하나님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회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리를 더 옳다고 하셨다. 

왜 일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의 의로는 하나님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보는 관점과는 다르시다.

나의 눈과 관점을 열 필요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은혜가 필요하다. 

새리처럼 하나님 앞에서 "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죄인입니다." 하고 통회할 수 있는 마음을 주님께 간구한다. 

 

주님 제 안에 바리새인처럼 내 자신은 옳다하고 다른사람을 멸시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나의 생각을 넓혀주시고, 이웃을 주님이 보시는 눈으로 보게 하소서. 

세리처럼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다니엘과 코로나시대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1. 1. 8. 01:09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목사님께서 전해주신 다니엘말씀과 함께 코로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어떻게 다니엘처럼 이 시간을 살 수 있을 지 묵상해 보았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어린나이에 이방나라에 끌려가 내시가 되었다. 

그는 가족들과도 헤어져야 했고, 

친구들과도 헤어졌고

그가 살던 정던 고향도 등져야 했다. 

다니엘 1:3절에 보면 그는 왕족과 귀족중의 한사람이었다. 

편안하고 안락하던 삶은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다니엘 1:2절에서 보면 

주께서 유다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환난을 유대백성들에게 허락하셨다. 

유대 백성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을 겪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를 당한 이 시대에 다니엘이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다니엘은 이방 포로로 잡혀갔지만, 

1:8 절에서 보듯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은 이방나라에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결단했다. 


 

다니엘이 이 시대에 있었다면, 어떻게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결하게 지켰을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을 것이다. 

우리가 알듯이 그는 기도시간을 집중하였으며, 세상에서 어떤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기도에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흠이 없다 했다. 성실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순결함을 지켰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분들이 확진이 되고, 자가격리를 해야했고,

나라를 이동할 때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이 속에서 환난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뜻을 구하고 

생명걸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다니엘을 기억한다. 

 

우리도 이 모든 환난가운데서도,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며 

기도할 수 있을까? 생명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탁할 수 있을까? 

다니엘은 그가 당한 환란의 답을 구하기 위해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다. 

 

새해가 시작되는 즈음 다시금 뜻을 정하고 기도의 장소와 시간을 정하며 

말씀을 붙들고 이 시간을 믿음으로 살아내기 위해 기도의 무릎을 꿇으려고 한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0. 12. 7. 19:15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친구들이 요즘 오륜교회에서 하는 다니엘 기도회에서 많은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오늘 아침 우연히 다니엘 기도에 탈렌트 오윤아의 간증이 연결되어 듣게 되었다.

그녀의 간증은 중간 중간 맘이 함께 동하여 그녀의 눈물과 함께 눈물이 나게 하였다.

 

그녀가 한말 중에 자폐아 아들 민이 때문에 여러가지 힘든 일이 있지만,

민이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다고 고백했을때 그 말이 나의 마음에 꽃혔다.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가끔 그 성장통을 함께 겪으며 불평이 올라올려고 할때도 있었다.

그 많은 기도에도 아이들의 성장과 자립이 늦어질때

한숨섞인 불평이 나올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윤아는 아들이 국민학교 올라갈때 1년 쉬면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듣고 엄청 울었다 했다.

우리에게는 일상이 그녀에게는 아이를 키우면서 7년만에 들어보는

아주 특별한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고 얼마나 행복했던 적이 많았던가?

더 많이 감사하고 사랑해야 함을 느낀다.

 

오윤아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하나님께 매일 열심히 기도하는데

치료가 늦어질때, 왜 입니까? 라고 의구심을 가지며 질문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폐아인 민이를 통해서 할 일이 있으시고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폐아인 민이를 양육하고,

민이를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자폐아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힘을 얻었다는 응원의 메세지를 받게 된다.

 

본인이 탈렌트이면서 남들의 시선이 항상 따라다니지만,

자폐아인 민이를 데리고 다니는 그녀를 보면서

아들을 사랑하는 대범한 엄마를 본다.

오윤아는 성장과정에서 결혼하면서 많은 아픔을 겪었지만,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하나님을 붙들고 성큼성큼 나아간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눈물의 걸음을 성숙과 성장을 가져오게 하였다.

아픔이 거름이 되어 사랑의 화원을 이룬 그녀의 삶을 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폐아를 향한 따뜻한 시선도 부탁했다.

 

오늘 그녀의 간증을 들으며 나의 삶을 더 큰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안을 수 있는 마음이 된다.

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나의 남편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사랑하는 가족으로 인하여 함께 살아감으로 오는 성장의 고통들이 있지만,

이 고통도 선물로 사랑으로 안을 마음을 가진다.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져 가는 그 날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바라보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 127:3)

정윤선 대표,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0. 12. 7. 19:03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다니엘 기도회, 정윤선 대표,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주위에 친구들이 다니엘 기도회 말씀이 좋다고 추천을 많이 했다.

나는 늦깍이 끝날때즘 영상들을 찾아서 듣고 있다.

정윤선 대표의 간증을 들으며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당한 어려움이 감당이 안되 몇번이나 쉬고 다시 들었다.

 

부모님의 이혼, 새어머니의 학대, 매질, 신학교입학,

중간에 휴학하고 어머니를 도와 술 까지 팔아야 했다.

 

정윤선 대표의 마음은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고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새로오시는 어머니 마음에 들고 싶어 어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신앙을 소개한 어머니가 변하여 두 자매를 매질 할 때도 그녀는 반항하지 않고

십자가 앞에서 울며 기도했다. 새어머니가 신앙으로 돌아오는 다리역활을 하고 싶어했다.

 

결혼을 한뒤 행복할 시간도 없이 남편의 뇌종양으로 6개월 된 어린아들을 데리고

남편을 간호해야 했다. 그녀의 간증을 들으며 끝없는 고난속에 맘에서 화가 순간순간

올라오는 듯했다.


남편의 시련앞에 어느날,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다

그녀는 감사를 발견하게 되며 그녀의 인생의

관점이 변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남편의 시련을 통해 오히려 그녀가 일을 시작하며 전문가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축복의 기회가 되었다.

 

아이를 보고 안을 수 있는 눈과 손이 있음에 감사,

남편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다가

그녀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고

흙인 사람에게 하나님이 입히신 축복이며 다 하나님것이라는

깨달음을 가지게 된다.

 

힘든삶을 산 그녀에게 또 다시 닥친 시련앞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감사와 사랑을 선택하게 된다. 남편의 간호와 자녀 양육으로 인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자신이 잘하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새롭게 디자인 일을 온라인에서 하나하나 배우며

디자인으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 10여명의 직원을 이끌고 일하는 디자인 회사의 대표이며

작은 개척교회들을 돕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한다.

사모가 되고 싶은 그녀의 꿈은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꿈, 진실한 예배자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개척교회에서 봉사하고 예배하기 시작했다고 간증했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이 늘 옳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을 까?

정윤선 대표의 착한 마음, 그녀의 어려움과 고난을 안고 포옹하는 마음,

하나님의 공의를 믿으며 그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속에서 잔잔한 감동이 있다.

 


욥이 생각난다. 욥의 고난속에서 세친구는 이 고난이 어떻게 왔는지,

욥의 죄때문이라고 공격했다. 우리는 마지막에 그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광대하심에 욥 조차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그저 함구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장면이 생각난다.

하나님이 늘 옳습니다. 많은 고난을 통과하고 사랑으로 이겨낸 그녀의 고백은 힘이 있다.

그녀를 따라 고백해 보자. 하나님은 늘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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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해석의 변화, 요셉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0. 12. 7. 18:15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느티나무님이 나뭇가지로 만든 성탄 추라


요셉은 아버지 이삭의 죽음으로 자신들을 보복할까봐 두려워 하는 형들에게

자신의 관점이 변화된 것을 말한다.

우리는 요셉이 식량을 사러온 형들을 처음만날때 부터 자신을 형들이 팔아넘긴 요셉이라고 밝힐때 까지만 해도 형들을 용서하는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볼 수 있었다.  

 

요셉은 고난많았던 자신의 인생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제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보고

형제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민족의 입장에서 그의 삶을 다시 재조명 해 보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시작하면서

나 중심에서가 아니라 더 넓게 보기 시작하면서

요셉은 자신의 고난의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 고난을 바꾸신 하나님도 만나게 된다.

이 관점의 변화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하다.

나도 내 삶을 보는 눈의 관점이 이제야 변화되고 확장되는 부분이 많다.   

 

회복 미술 치료 프로그램을 끝내면서 나에게도 다시금 관점의 변화가 왔다.

어릴적 고난이 많았고 어려움이 많아서 아픈 날들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나를 만나고, 그 때의 환경들을 만나 보았을 때

그속에서 긍정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기울어 질때 많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한탄하지만, 이 관점이 변화될때, 우리 인생이 변하고,

삶이 변화되어서, 미래도 밝게 열어 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 이 시간을 살면서 또 관점의 변화, 인생의 해석을 달리 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일 있을 까

돌아본다. 스카펙의 말처럼 인생은 고통이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관점이 변화된다면,

고통의 삶의 재료는 오늘의 긍정의 우리를 만드는 훌륭한 재료들이 될 것이다.

 

오늘도 주어진 이 하루 감사함으로 살며, 기뻐함으로 살아가련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 50: 19-21)

 

 

 

 

 

 

 

 

겨자씨, 천국비유, 작은것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20. 11. 30. 18:09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묵상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으며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하나님나라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밭에 가지고 가서 뿌린 겨자씨와 같다. 그 씨가 자라고 나무가 되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틀었다 (눅 13: 18-19)

(It is like a tiny mustard seed that a man planted in a graden, it grows and becomes a tree and the birds make nests in its branches.)

 

이번에는 이 구절속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밭에 가지고 가서 뿌린 겨자씨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어떤 사람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정원에 작은 씨를 뿌린다.

나는 오늘 이 씨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고 싶다. 우리가 읽게 되는 말씀을 붙들고 마음에 새기고 선포하게 될때

그 말씀이 내 마음에서 자라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은 우리 맘속에서 믿음을 가져오며 의심과 불안과 걱정을 거두어 가게 될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품고믿음으로 선포할때 나의 환경이 변하든지, 그 환경을 넘어가든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씨가 자라고 나무가 될 것이다.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걱정많은 나의 마음에 이 말씀을 마음에 품는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이 들려 저리로 이동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밭에 가지고 가서 뿌린 겨자씨,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믿으며 선포하기를 원한다.

천국이 믿는 자의 마음에 이루어 지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이루어지고, 우리의 사회에 이루어 지게 될것이다.

 

아주 작은 겨자씨를 자신의 밭에 가지고 와서 심은 농부처럼 나의 마음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서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게 되는 날을 소망한다.

 

겨자씨

겨자씨가 궁금해진다. 예수님께서도 두번이나 언급하셨다. 중요한 천국 비유에 사용된 겨자씨가 궁금해 진다.

겨자씨를 본적이 있다.

 

겨자씨는 겨자의 씨이며 양념으로도 쓰이고 기름을 짜기도 한다. 우리가 즐겨먹는 겨자인가? 겨자가루에 식초와 겨자씨 기름, 전분 설탕을 섞어 만든것이 머스타드 소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화로 드신 겨자씨도 영어로는 mustard seed로 NLT는 번역하고 있다.

 

겨자를 검색하다 난황에 봉착했다. 겨자는 식물로 분류되며 한국의 유채꽃처럼 잡초처럼 노란꽃이 흐트르지게 피는 식물이다. 어떻게 이 겨자가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가 된다는 것일까?

겨자에 대해 여러 사이트를 조사하다가 직접 성지를 다녀온 분의 글을 읽었다. 갈릴리 호수를 보고 은혜를 듬뿍 받은 사람들이 겨자를 보고는 모두다 실망하는 것이다. 갈릴리 호수가에 피어있는 겨자를 보고 너무나 작고 초라해서 실망한다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작은 것을 비유할 때 겨자씨를 비유하곤 한다는 것이다. 1세기 유대인의 관점으로 본다면 겨자씨처럼 보잘것 없는 작은 씨하나를 농부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직접 가지고 오셔서 자신의 정원에 심으셔서 기르신다는 것이다.

작은 겨자씨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나님나라에서 귀하게 사용하시고, 하나님나라 확장의 일꾼들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성경속의 겨자씨

 

겨자씨 만한 믿음, 밭에 뿌린 겨자씨의 비유를 보며 작은것을 무시하지 말아야 겠다. 작다고 생각하는 것들, 일상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말씀 한구절, 어린이 한명, 밥 한끼, 이웃과 나누는 작은 나눔들말이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자.

우리의 농부이신 하나님은 겨자씨같은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정원에 심기워 주시고 자라게 하시고 성장하게 하셔서 열매맺게 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것들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