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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꿈, 자녀교육

살며 사랑하며 용서하며/치유와 회복 2020. 12. 11. 13:59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멜라니 여사의 크리스마스 추리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시고 요양원으로 엄마가 옮기셨다.

옮기시는 중에 구토가 나와서 며칠 힘드셨는데,

피곤하셔서 그런줄 알았더니

또 몸에 소금이 모잘랐다고 한다.

 

소금 투여로 엄마는 괜찮아 지시고, 기력을 회복하셨다.

요양원에 와이파이가 고장나 며칠 통화를 못했더니

엄마는 큰딸을 보시자 눈물이 글썽글썽하신다.

 

어릴적 작은 아버지가 집에 자주 놀러와서 나의 공부를 도와 주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영어 카세트 테잎까지 있었던게 기억이 났다.

그 영어 테잎은 엄마가 사준 건지? 삼촌이 사 주신 건지? 몰라 엄마께 여쭤보니

엄마가 사주신 거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골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사 주시다니, 엄마가 교육에 열정이 많으셨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어머니는 혼자 세딸을 키우시면서 억척같이 돈을 버셨다. 시골에 집도 마련하시고

자녀들 교육을 해 내셨다.

지금도 보면 여자 혼자서 아이들 데리고 먹고 살기도 바쁜데 도대체 어떻게 재정을 모았을 까?

 

엄마는 밤낮으로 일하셨고 공장에도 다니시고, 화장품 판매원도 하시고, 라면도 파시고,

열심히 일하면서, 저축도 엄청하셨다. 특히 그 시절에 동네 아줌마 들이랑 계를 하면서

목돈을 모으셨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버시고 모으셨는데,

우리한테는 재정에 대해서 교육을 시킨적이 없었다.

 

엄마에게 이 부분을 여쭈었더니, 엄마도 바빴고 우리도 공부하느라 바빠서 이기도 했지만,

엄마는 우리가 공부하는데 돈 맛을 알면 공부 하겠나 싶어, 얘기하지 않으셨다 한다.

그런데 엄마의 꿈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하셨다.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냐고 여쭈어 보니

엄마의 꿈은 큰 딸이 박사가 되는 거라고 했다. 나는 박장 대소하면서

엄마의 꿈은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렸다.

엄마가 열심히 딸들을 교육시키셔서 박사사위가 둘이고,

딸들도 계속 공부하고, 훌륭하게 자랐지 않느냐고 했더니

맞네...하신다.

 

나는 지금까지 엄마의 꿈을 몰랐다.

내꿈하고 같았네. ^^

이제 나이 때문에 공부하는 것도 멈출려고 했는데,

기회가 되면 엄마의 꿈과 나의 어릴적 꿈을 이루기 위해

박사과정을 공부해야 겠다. 🤣

 

엄마는 큰딸이 박사가 되어 강단에 서는 것이 쑴이셔다 하신다.

본인은 그렇게 악착같이 딸들 키우면서 재정을 모으시더니,

엄마의 꿈은 딸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가 되고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었다.

새롭게 알게된 엄마의 꿈을 들으면서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엄마가 열심히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공부하는 것에 지원해 주신

그 수고에 감사하며 우리 엄마에거 하트를 날려드린다.
🧡🧡🧡🧡🧡🧡

 



이번달의 목표는 일일 일 나눔을 세워 보았어요.

일일 일선의 개념이지요.

가지고 있는 작은 물건을 나눈다든지, 밥을 산다든지, 선물을 한다든지 등등

작은 것이지만, 매일 일일 일 선을 하는 개념입니다.

꼭 물건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죠.

 

저는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글로써 1일 1나눔을 할 수 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럴려면 일일 일글은 쓰야 겠지요.

 

오늘이 12월 7일인데, 친구에게 귀걸이 하나 선물하고, 밥도 샀고, 맛있는 과일도 나눔했네요.

기생충약 자료가 필요하다는 친구들에게 글로 정리해서 보내드리기도 했구요.

 

근데 1주일이 지나면서 1일 1선을 잊어 버리고 있었네요.

요즘은 코로나 시대라 만나기가 어려우니, 일일 일나눔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학기에 배운 행복 심리학에서 숙제로 주위에 있는 10사람에게 칭찬을 하고 후기를 적었는데 기억이 났습니다.

칭찬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 생각을 해야했어요. 평소에 감명밥았던것, 느꼈던 것을 정리해서 만나서 말로 하든지 아니면 메세지로 칭찬을 전달하며 숙제를 마무리 했었죠. 칭찬하면서 저도 좋았지만, 칭찬을 받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격려받고 행복해 했네요.

 

칭찬하기가 생각나, 함께 있던 친구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동안 감동받았던 부분들을 칭찬했네요.

친구들이 넘 좋아했어요.


저는 90세된 오르간 선생님이 계셨는데, 레슨 받을 때마다, 선생님이 세심하게 칭찬해 주셔서 격려가 많이 되었어요.

선생님께 칭찬 받기 위해 더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도 납니다.

 

저의 이웃집에 한 언니가 있는데 이 언니도 칭찬을 잘합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만나면, 칭찬으로 주위 사람들을 세워 주네요. 특히 사위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지혜로운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사위를 칭찬하면 사위가 기분이 좋아져서 딸한테 잘해 줄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너무 중요해서 그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는것을 볼 수 있어요.

12월 한달은 일일 일나눔: 일일 일선: 일일 일칭찬을 실천해 볼려고 다시 기억을 가다듬습니다.

딸에게 힘든 가운데서도 열심히 살아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칭찬했더니, 밝은 목소리로 좋아합니다.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서 사랑의 언어인 칭찬을 사용하는 것을 연습하려고 해요.

여러분들도 일일 일나눔, 일일 일 칭찬 해보시죠.

 

 

 

 

 

 

 

 

 

인스타를 구경하다 이 사진에 눈길이 멎었다. 한 그루 포도나무에 4500송이의 포도가 탐스럽게 기적적으로 열렸다.

와우 어떻게 연약한 한그루의 포도나무에 이렇게 튼실한 포도들이 열릴 수 있을까?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이 나무는 14년된 나무라고 한다. 이 연약한 포도나무가 거대한 과실의 어머니가 된 이유는 도덕현 농장 대표의 철학이 있었다.

 

어릴때 부터 나무에게 한 1미터 떨어져서 물을 주었다. 다시 시들기 시작하면 더 멀리 물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나무가 가진 유전적인 능력을 키워주기 원했기 때문이었다. 이 원칙은 어릴적 내가 상상했던 비 바람, 격한 환경속에서도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싶어, 마음으로 그려보았던 그 이미지를 생각나게 한다.

 

도덕현 대표는 "너희에게서 뿌리가 나와서 너희가 물을 먹어라. 내가 갖다 주지 않겠다. 어려서 부터 그렇게 포도나무를 교육 시켰다" 한다. 살아라,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손을 뻗어서 물이 있는 곳까지 뻗어오느라!!! 나무안에 있는 생명력이 살기 위해 1미터 떨어진 곳으로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을 것이고, 그렇게 포도나무는 뿌리가 넓어지고, 강해져 갔던 것이다.

 

코로나때문에 외국에 떨어져 살고 있는 자녀들이 생각난다. 아들은 재정적 지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 해봐.."하고 응원해 준 걸음이 아들와 함께 크고 작은 모험을 같이 해야 했었다. 딸은 감정이 더 섬세해 타지 생활에 힘들어 가는 감정들을 함께 타며 넘 가까이 밀착 케어할 려는 엄마의 모습을 본다.

 

어릴때는 오히려 이 포토나무처럼 원을 크게 그려주고, 그 안에서 스스로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했던것 같은데 요즘 엄마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가까이 물을 주지 않고 1미터 떨어져서 스스로 물을 먹고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농부의 마음안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 포도나무 안에 있는 생명력을 믿었을 것이다. 이 포도나무가 살기위해 물이 있는 곳까지 뿌리를 강하게 뻗을 줄 믿었을 것이다. 엄마의 마음은 나무가 시들어 가고 있다면, 당장 나무의 힘듦때문에 코앞에 물을 잔뜩 부어줄 것이다.

이 농부의 믿음과 뱃장이 마음에 든다. '너가 손을 뻗어 나와서 물을 먹어라'

 

딸은 무심한듯 믿어주는 아빠가 요즘은 자기랑 더 맞다 한다. 딸의 작은 흔들림에 함께 흔들리며 안달하는 엄마보다 크게 원을 그려주고 기다려 주는 아빠가 맘이 더 편할 것이다. 자녀들은 자랄것이다. 성장할 것이다. 이 들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생명력이 손을 뻗어 물을 먹이고 자라며 성장하며 세워져 나갈 것이다.

 

친구가 보내준 아티클 좋은나무 김성경 대표의 글 속에서 아이는 자라는 과정중에 있으며 지금 모습이 결말이 아니며 잘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순간이 오도록 기다리자고 제언한다. 믿어주는 기다림의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아이속에 씨앗을 뿌리고 싹이 자라고 있음을 믿자!!!!

 

이 아침 이렇게 훌륭한 포도나무를 키워낸 농부의 마음을 생각하고 느끼며 감동을 받았다. 포도나무가 살아나며 강해질 수  있도록 1미터의 여유를 주며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을 본받을 련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 15:1)

https://cemk.org/19250/

 

 

 

 

 

 



남편이 나누어 주었다. 상담을 공부하며 자신의 부정적 사고를 보게 되었으며, 이것을 인지하고 좀 더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인간은 원시적부터 살아남기 위해 위험을 감지 하기 위해 부정적사고가 개발 되었다.사람이 어떤 사건에 부딪히게 될때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쉽게 더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 처럼 생각하게 되며 거기에 함몰하게 된다.

 

아론 백은 우울증의 문제에서도 인지적 왜곡에서 일어나는 수가 많다고 했다. 같은 문제를 당해도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 패턴에는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이 왜곡된 해석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또한 자동적 사고 라로 부른다.

 

난 할 수 없을 거야. 더 안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등등 자동적으로 이 부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특이한 점은 우울이나 불안에 휩싸인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 하기 보다는 자신의 기억속에 있는 과거의 정보에 더 많이 의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상황자체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황을 연속적으로 보기 보다는 극단적인 측면에서 본다.

한가지 일로 적합하지 않은 전체적으로 결론을 내어 버린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일어난 부정적인 작은 사실에 집중한다.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며

부정적인 면에 너무 집중해서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을 놓치게 된다. 등등

😀남편은 이것에 대항해 사건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 해야 한다고 예들을 들어 설명해 주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때 이에 대해 스스로 반박해 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부정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긍정적이고 격려가 되는 말을 스스로에게 여러번 말해 보며 스스로를 격려하기이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잘 할 수 있다고 잘 될거라고 다독여 주는 것은 자신에게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시야를 멀리해서 보면 지금 당한 일이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일을 만나면서 부정적이고 놀랄만한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이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실망하고 낙담하고 우울해 하는 것은 당연할 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긴 인생에 이 일들이 긍정의 효과가 있을 지 어떻게 아는가? 길게 생각하고, 큰 틀에서 다시 보며, 조금 쉬어 가며, 쉼이 필요한 나를 격려하며 힘을 북돋아 주는 것은 어떨까?

 

내 스스로도 여러가지 일들 속에서 자신을 격려하고 가족들을 격려하고 희망을 말하며 다가오는 축복을 선포하는 일이 필요함을 느낀다. 당장 우리 스스로를 격려해 보자.  ^^

 

 

 



상처와 대면하는 시간은 언제나 쉽지가 않다. 오늘 상담선생님께서 나눠 주신 A4용지에 달걀안에 태아기때부터 지금까지의 상처들을 적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태아기 때 부터 생각해 보니, 엄마가 느꼈을 법한 아픔과 갈등을 대면할 수 있었다. 종이 한장 가득채운 그림과 글씨들, 하나씩 꺼내보며 계속적으로 머물러 보며 작업하는 과정을 밟아 가야 한다.

 

나의 가장 큰 아픔 7살때 아버지가 떠났던 나룻터를 그동안 수십번 갔었다. 오늘도 그 나루터 가는 길을 만난다. 그 길에서 아빠를 보냈다.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을 만나고, 불안을 만나고, 불신을 만난다. 오늘은 나의 상처를 대면하며 그리며 큰 아빠를 쫓아가던 나는 아빠의 손을 붙잡았다.  아빠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어린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오늘 드디어 떠나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오늘 선생님이 준비한 활동은 검은 도화지와 테이프로 오늘 만났던 상처를 표현해 보는 것이었다. 오늘도 징검다리님은 두려움을 조형으로 표현해 내었고, 각자 다채롭게 각자의 아픔을 만나고 표현해 내었다. 나는 아빠를 보낸 신작로와 나룻터를 테이프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린내가 아빠를 보냈던 나룻터, 그 나룻터를 가기 위해선 10여분 걸어야 하는 긴 신작로가 있었다. 아빠를 따라 나룻터를 가던 나는 아빠의 손을 붙들었고, 아빠와 함께 배를 타 버렸다. 아빠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배가 떠나기 시작했을때 배와 땅과의 거리를 보며 여전히 마음이 아팠지만, 나는 잠시 활동을 멈추고, 아빠와 함께 배를 타고 가족을 떠나는 그 길을 함께 갔다.


 

 

 

그리곤 아빠와 함께 내가 잃어 버렸던 세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보낼 집으로 갔다. 아빠와 함께 맛난 식사를 하고, 아빠가 나의 피아노를 들어주시고,  열심히 공부하는 나를 지켜봐 주신다. 행복하다. 그리곤, 아빠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산책을 함께 해 본다. 허전하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누구든 나이가 들어 부모를 떠나 독립하게 되지만, 나는 아직 아빠를 떠날 준비가 되지 못했다. 이제 만났기 때문이다. 아빠랑 더 같이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재밌게 같이 노래도 하고, 운동도 하고 더 아빠랑 놀다가 아빠를 떠나 보낼 수 있을 때 그 집을 나와야 겠다.


 

 

 

엄마도 동생들도 그 집에 함께 부른다. 잃어 버렸던 나의 학령기를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만들어 본다.

받지 못했던 사랑도 받고 사랑도 드리고 말이다. 떠남이 나의 이슈인듯 하다. 자라서 둥지를 떠나 자신의 삶들을 개척하는 아이들과 함께 자녀들을 온전히 떠나 보내지 못해 마음 아파할때가 있다. 아버지를 만나며 마음에서 오히려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내가 아버지를 떠나게 될때, 나의 자녀들도 온전히 떠나 보낼 수가 있을 것 같다.

아버지 이야기에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나는 아빠 부재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어린시절 아빠의 존재가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 나의 옆을 지켜주는 남편의 존재가 문득 너무 고맙다. 더 이뻐하고 사랑하고 좋은 추억들을 함께 만들어야 겠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과제는 이 상처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신문지로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나는 신작료에서 붙든 아빠의 손을 신문지에서 찾아 오려 넣었다. 어린 나는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떠나는 아빠의 손을 잡았다.

함께 작업했던 친구들이 남겨준 메모들이다.

 

 

 

 

 

 

 

 

 



회복그룹이 어느새 중반기를 넘어 가고 있다. 평소 아시는 분도 계시고 새롭게 만난 분들도 계시면서 오래된 친구처럼 되어가고 있다. 박스를 세개를 준비물로 가져가야했다. 도대체 상자로 어떻게 나를 표현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집에 있는 상자들을 찾아보았다. 요즘은 그때 그때 버리기를 좋아해서 박스들을 거의 버렸지만, 박스들이 남아있었다.

 

최근에 오카리나를 산 작은 박스, 소리좋아하는 나는 오카리나 박스가 좋았다. 색깔도 푸른색에다 오카리나 그림까지 있었다. 박스 모양도 일반적 박스가 아니라, 뚜겅이 달려있어 좋았다. 또 하나는 빨간색 샌들 박스였다. 망설임없이 이 박스를 골랐다. 내가 제일 좋아 하는 색이 빨간색 이었기 때문이다. 박스 세개를 준비해서 회복그룹에 도착했다.

 

박스 세개로 붙여도 되고 떼도 되고, 다 사용해도 된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여러가지 재료들을 잔뜩 준비해 두셨다. 박스를 들고 가서 마음에 드는 재료를 담아와서 자기를 표현해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박스로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 서로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박스를 들고 와서 마음에 드는 재료들을 가득 담아 왔다.

 

오카리나 상자로 만들어 볼려니 작아서 빨간색 상자로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면서 뭘 만들고 싶은지 생각이 났다.

상자안에 어릴적 추억들을 만들어 넣기 시작했다. 어릴적 마당있던 우리집에 있던 나무들을 먼저 가장 자리에 세웠다.

들고왔던 재료중 스치로풀을 보니 어릴적 엄마한테 혼나서 밥도 안먹고 집옆에 있던 헛간에서 혼자 있던 그 밤이 생각났다.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밑에서 바라보던 함박눈이 얼마나 아름다웠든지 그 눈들을 마당에다 박스 윗면에다 눈을 본드로 붙였다.

 

가지고 있던 구멍난 스치로풀을 보니 20대때 느꼈던 우울한 마음이 생각났다. 잘 지내다 그 구덩이에 빠지면 빠져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기억이 났다. 20년 동안 셀프 프로세싱을 성령님과 함께 하며 그 곳은 양파 껍질 벗기듯 어릴적 나의 아픔와 현재의 나를 연결했으며, 그 구멍난 구덩이는 조금씩 조금씩 메워지기 시작했다. 작은 구멍난 스치로풀을 메우며 그 구덩이를 표현하기 위해 세우면서 밑에 있는 지지대로 컵을 사용해서 메웠다. 나의 우울한 마음들이 메워지고

그곳이 단단한 땅이 되던 그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릴적 시간을 지나 현재의 나를 표현하는 상자를 만들고 싶어 오카리나 상자를 빨간 상자옆에 붙였다. 내가 가져왔던 부드러운 담요같은 핑크빛 옷감이 넘 마음에 들어 바닥에 깔았다. 현재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부드럽고 따스한 천처럼 편안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의 소망을 담았다. 그리곤 우울한 마음을 표현했던 그 구멍난 스치로풀을 잘라서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만들었다. 피아노 지지대로 컵을 사용해서 밑에 받쳤다. 그 지지대는 간단하게 만들어 졌으며, 그 단단함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어릴때 아름다운 추억의 눈들을 가져왔다. 즐거운 기억을 가져다 주는 눈 스치로풀은 공을 연상시켜 나에게 오는 사람들이 함께 놀며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뭘 만들지 몰라 망설였던 자아 상자 만들기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미지의 뭘 해야 할 지 몰랐던 그 재료들이 다 사용되어져서 넘 기뻤다.  자아 상자를 만들며 새롭게 발견한 것은 아픔과 상처와 고통이 많다고 느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돌아보니 즐거운 추억이 많이 있는 것이다. 시골에 살아서 자연으로 말미암아 정서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았다.

상자를 다 만들고 우리는 함께 나누었다. 안과 밖중 어디를 먼저 시작했는지 봤을 때 다들 달랐다. 나는 밖은 거의 신경을 안썼다. 상자 자체가 좋아서 간단히 손질했으며 안을 만들었다.

 

작은 손가락 만한 사람이 되어 그 상자 구석구석 다녀 보라 할때, 그 상자를 돌아다녀 보았다. 나는 여전히 구석자리가 편함을 느꼈다. 집에 와서 그 박스를 다시 돌아보며 그 속에서 놀아 봤다. 어릴적 경험했던 따뜻한 햇살을 다시 기억하며 양지바른 곳에 앉아 햇볕을 쬤다. 친구들과 고무 놀이도 하고, 부드러운 카펫을 만지고, 눈을 공삼아 신나게 놀아 보았다.

 

서로 뭘 만들지 막막했던 다른 지체들도 본인을 표현하는 상자를 창의적으로 잘 만들었다. 표현에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던 징검다리님은 조형 미술 작가로 데뷔해도 좋을 정도로 입체적으로 본인을 잘 표현했다. 우리안에 있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며 함께 울고 웃는 사이에 우리는 성장해 가고 있다.

 

 

 

 

 



요양 병원에 계신 어머니와 일주일이 넘게 연락이 안되었다.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소금을 절제했더니, 전해질이 부족해 지샸다고 진단결과를 받았다. 요즘 코로나때문에 요양 병원에 면허가 안되서 엄마도 무처 답답하실거다.

엄마가 힘이 없어지시고, 걷지를 못하게 되셔서 두달째 병원에 계신다. 엄마는 평생 자식들 밖에 모르고 사시고 매일 통화해야했다. 한 이주 계속 전화드려도 엄마랑 통화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드디어 엄마가 전화하셨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우신다. 그동안 전화가 고장나서전화를 못 받으셨다고 하신다. 오늘 간호사 선생님께 좀 고쳐 달라했더니, 자세히 봐 주시더니 내트워크 문제라고 전화기를 고쳐 주셨다한다.

엄마는 딸보니 넘 좋다하신다. 엄마는 요즘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며 어릴때 우리와 많이 놀지도 못하고, 돈 모은다고 맛있는것도 많이 못 사주고 이쁜옷도 많이 못 사줘서 후회된다고 하셨다.

엄마는 정말 악착같이 돈을 버셨다. 세딸을 혼자 키우시면서 시골에 집을 장만하셨다. 딸들에게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셨을것다.

‘그래 엄마 내가 한국가면 하루라도 놀아달라고 했는데 출근한다고 안 놀아 주셨잖아’ 했더니, 이제 한국 오면 나랑 실컷 놀아 주실거란다. 막내동생도 엄마한테 아이들 어렸을때 엄마 제발 와서 같이 지내자 할때 엄마가 절대 안오셨다고 섭섭함을 표현했다고 한다.

엄마는 세딸과 아기자기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게 후회된다고 하셨다. 어릴때는 세딸 캐우시느라 그렇게 바쁘고 힘드신가 했는데, 아이들이 떠난 후에도 엄마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셨다.

엄마에게 엄마는 참 멋진 여성이라고 말씀드렸다. 여성 혼자서 세딸을 케우시기로 작정하시고,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세딸을 훌륭하게 캐우셨으니 말이다.
요즘 새삼 엄마가 그 시대에 자주적인 여성으로 의지의 한국인으로 와 닿는다. 멋진 우리 엄마!!!
나도 어릴적 엄마랑 넘 같이 놀고 싶었는데, 이제는 멀리 외국에 나와 있어 엄마랑 시간을 보낼수가 없다.

이제 또렷해지신 엄마모습을 보니 반갑고 감사하다.
엄마는 건강을 회복해서 손자손녀들 자라는거 함께 보실거라하샸다.

엄마랑 어린시절 함께 보낸 추억은 많이 없지만, 엄마의 사랑과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음에 감사한다.

*자녀들이 함께 있을 때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을 만들자.
*자녀들의 고민이 뭔지, 소망이 무엇인지, 사소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눠보자.
*사랑해 말로 표현하며 아이들을 안아주자

[커뮤니케이션 진단툴] 조하리의 창(Johari's Windows) 에서 가져온 사진 https://m.blog.naver.com/ksalt7/220060632474#

조하리의 창은 여러번 들어서 알고 있는 이론이다. 자신이 아는 부분과 다른 사람이 아는 부분이 넓어질수록
인간 관계의 폭이 넓어지며 이해가 생긴다.

고향에서 결혼할때 까지 자랐으니, 나는 굳이 내가 누구인지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온식구를 서로아는 작은 동네에서 자랐으니 말이다. 어릴때 부타 자랄때까지 다.

결혼을 해서 남편을 따라 다니며 외국에 살기 시작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어느날 한 지인이 어릴적 아버지의 알콜 중독으로 인해 구타당했던 여러번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느꼈다. 부끄러운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 내니 우리도 그 분을 이해하게 되고 그 분도 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이후 나도 나의 이야기를 해내기 시작했다. 어릴적 부모님이야기, 아팠던것 등등 이다. 어느날 한 친구를 붙들며 나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의붓어머니와 아버지와 그녀의 자매들이 괴롭혔던 어린시절이야가는 눈물없이 들을수 없어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느낀건 다들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구나였다.
치유와 회복을 위한 그 걸음속에서 배우고 느끼고 회복된 이야기를 친구들과 그리고 글로써 나름 열삼히 이야기를 해 냈던것 같다.

성장통을 앓고 있는 딸과도 이야기를 나누며
딸의 친구가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Sns를 통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누는 모습에 영향을 받아 딸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적기 시작했다 한다.
또한 친한 친구와 내면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깊이 이야기 하며 나눈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과 다른사람이 아는 나의 모습이 넓어질수록 우리는 좀더 건강한 관계들을 맺어 나갈 수 있을것 같다. 🌷

가족 그림그리기

살며 사랑하며 용서하며/치유와 회복 2020. 10. 30. 22:23 Posted by 푸른바다 셜리



치유 회복 그룹에 참여하면 가족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미술 치료를 공부하며 가족동역화에 대해서 들어 보았었다. 가족이 무언가 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어릴적 원가족 그림을 그리는데, 어려움과 아픔이 있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 우리가 함께 노래할때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그렸다. 

 

내가 성장한 가정이 역기능 가족이라 정의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 회복할려고 오랫동안 씨름했지만, 원가족의 가족 역기능 검사를 했을 때 오히려 그 수치가 높지 않았다. 아빠가 부재한 가정이었지만, 엄마의 헌신과 희생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주셨고 세딸이 서로 본딩하고 자라 나름 우리는 조금만 주위의 도움이 있으면 회복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어릴때 시골교회가 우리의 큰 가족이 되어 주어 우리는 그나마 든든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가족 그림에서 가족의 위치와 거리가 내 마음의 거리를 반영한다고 한다. 막내 동생이 나와 심리적 거리가 가까웠다. 

특히 뒷모습을 보이는 가족이나, 여러번 고치는 가족과는 마음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싱글 맘이었던 엄마, 아빠의 자리까지 감당해야 했던 엄마, 세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장 엄마와의 심리적 거리로 융합적 관계가 되어 엄마와의 관계를 씨름한 증거가 그림에도 나타났다. 엄마의 자리를 고민하고, 모습을 고민하면서 여러번 고치기도 했다. 

 

가족 그림을 통해 삶의 무게로 우리가 자라는 이쁜 모습을 즐감할 시간이 없었던 엄마에게 마음의 애잔함을 느꼈다. 장녀로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던 나에게 마음이 쓰여 마음의 눈물을 만나며 어린 나를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가족그림그리기에 참여한 동료들의 위로의 말을 들으며 따뜻한 마음의 감동을 받았다. 10여분의 짧은 시간에 그린 원가족 그림그리기를 통해 어릴적 나를 다시금 만나며 가족들도 다시 만나며, 마음의 눈물과 위로를 가져오는 시간이 되었다. 

동생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본인들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본다. 이쁘게 그려줬다고 좋아했다. 그림치료를 공부한 동생이 자신에게 엄격하냐고 물어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자기도 녹색을 사용했었는데 선생님이 자신에게 엄격하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생각해 봐야 할듯하다. 상담 선생님께서 그림이 작게 그려졌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커질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더 커져야 할 부분은 어디일까? 더 성장해서 충만하고 행복해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

투사는 자기의 모습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자신이 의식적으로 억누른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것으로 보는 것이 투사혹은 투영이다. (위키피디아)


 

 

 

부부가 살때 서로 스트레스 받았을 때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 파악하면 서로 대처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부부생활 25년이 넘어가면서 남편의 방어기제가 작동할때 처음에는 거기에 휘말려 들어 함께 부정적 반응을 해서 

서로 기분이 나쁘게 되는 수가 많았다. 

 

시행착오를 10년이상 겪은 뒤 어느날, 휘말리지 말자고 결심했다. 

남편의 방어기제가 나왔을 때, '아 그랬군요' 하고 그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을 그 사람것으로 인정해 주고 그랬군요 했을 때 남편도 곧 마음이 풀리고 나도 휘말리지 않아 우리는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삶을 돌이켜 보면 나는 남편의 성격때문이라고 탓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나의 투사가 아니었을까? 반성과 함께 되돌아 보아진다. 나 자신안에 그를 담을 만한 그릇이 아니었고, 내안에 억눌러진 것들을 오히려 상대에게 탓하고 투사함으로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사는 시간이 있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 사랑과 수용과 용서와 이해함을 배워 함께 하는 삶을 즐거워 하게 되었다.  

25년의 시간을 지나며 함께 성장하고 치유된 시간들이 감사하다.